지리학의 역사
동양의 지리학
혼일강리역대국대지도
한국의 지리학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의 지리학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는 한국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반구대 암각화,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토대로 당시의 지리관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신라 말기에 선종 승려들이 중국에서 풍수지리설을 들여왔다. 고려시대에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지리지처럼 지리에 대한 문헌이 남아있다. 이 시대는 풍수지리설이 유행한 시기였다. 서경 천도와 북진 정책의 추진 근거로 풍수지리가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지리지와 지도가 편찬되었다. 태종 때에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동양의 세계 지도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는 중앙 집권과 국방의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16세기에도 많은 지도가 만들어졌는데, '조선방역지도'가 현존하고 있다. 세종과 성종 때에는 지리지가 편찬되었다. 여기에는 군현의 연혁, 산물, 교통, 지세, 풍속, 인물 등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이 당시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중종 때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보충하여 편찬했다.
한국의 전통지리도 이에 따라 발달했다. 한백겸의 동국지리지, 정약용의 아방강역고와 같은 역사 지리서, 이중환의 택리지와 같은 인문 지리서가 편찬되었다. 실학이 발달하면서, 민족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중국에서 서양식 지도가 전해짐에 따라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같은 정밀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근대지리학이 도입되었다.
중국의 지리학
3세기 이후로 지리학적 연구와 지리학적 문헌 집필에 대한 중국의 이론은 13세기까지 동시대의 유럽에 비해 정교한 편이었다.
중국은 서양과의 지리적 이격으로 인해 천원지방 사상으로 대표되는 독자적 지리관을 발달시켜 나가게 된다. 결국, 지리적 개념과 연구 방법은 서양과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
범성대, 주달관, 유안, 배수, 가탐, 심괄, 서하객과 같은 중국인 지리학자는 중요한 문헌을 남겼다. 그렇지만 17세기에는 서양식 지리학적 이론이 중국에서 채용되었다.
서양의 지리학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기원전 9세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세계지도는 고대 바빌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낙시만드로스 (기원전 610년 경 -기원전 545년 경)는 후대 그리스 작가들이 지리학의 진정한 창시자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후대 학자들의 인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초로 예술과 과학의 방식으로 지리학을 바라보았던 그리스인들은 철학, 지도학, 수학, 문학을 통해서 지리학을 탐구했다. 파르메니데스나 피타고라스는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아낙사고라스는 식을 설명하면서 지구의 윤곽이 둥글다는 것을 보였다. 하지만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그는 지구는 편평한 원반이라고 믿었다. 고대에 지구의 반지름을 구한 사람에는 에라토스테네스가 꼽힌다.
히파르코스는 최초로 엄밀하게 위선과 경선 체계를 도입한 사람이었다.
중세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붕괴에 의해 유럽보다는 이슬람 세계에서 지리학의 발전이 두드러졌다. 무함마드 알 이드리시와 같은 무슬림 지리학자는 Tabula Rogeriana과 같은 상세한 세계지도를 제작하였다.
16세기-17세기 동안 지속된 유럽의 대항해시대에는 많은 신대륙이 발견되었다. 이때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마르코 폴로, 제임스 쿡 같은 탐험가의 발견이 이어졌다. 이들의 발견에 따라 유럽에서는 정확한 지리적 사실을 아는 것과 지리학적 이론의 기반이 필요해졌다. 경도를 찾는 문제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존 해리슨은 크로노미터를 고안하여 경도 문제를 해결했다.
18세기와 19세기는 지리학이 분리된 학문의 분과로서 인식되었던 시대였고, 유럽의 특히 파리와 베를린의 대표적인 대학의 교과과정의 부분이 된 시대였다. 많은 지리 학회의 발전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1821년의 프랑스 지리학회, 1830년의 왕립지리학회, 1851년의 미국 지리학회, 1888년의 내셔널지오그래픽 학회가 이 당시에 창설되었다. 임마누엘 칸트, 알렉산더 폰 훔볼트, 칼 리터, 폴 비달 드 라 블라슈는 지리학이 철학에서 학문상의 과목으로 인식되게 하였다.
이슬람 지리학
알 이드리시의 세계지도
아라비아인들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이슬람 제국이 영토를 확장한 9-14세기 동안 지리적 발달을 이룰 수 있었다. 동양과 서양 간, 인도, 중국으로의 교역으로 인한 무역로 개척, 교역을 통한 아시아의 지리적 지식이 첨가될 수 있었으며, 확장된 이슬람 제국을 통치하기 위한 자료로 지리적 지식이 요구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 이유로는 메카로의 순례 여행이라는 점으로 이전에 알려진 지리적 기록물을 참고로 순례지로 여행하며 새로운 지리적 지식을 지속적으로 추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동서양으로부터 지리적 지식을 흡수, 보급하기 위한 아랍어 번역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렇게 보전된 지리적 저서들은 이후 르네상스 시기 라틴어로 재 번역되어 지리학 재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슬람 지리학은 이뿐만 아니라, 수리 지리학을 발달시키고, 측량, 야외 조사 발달에 공헌하기도 하였다.
현대의 지리학
지난 2세기 동안, PC 기술의 발전은 지리정보학이 발전하게 하였다. 20세기 서구에서는 지리학은 주요 네 가지 과정을 가졌다. 계량혁명, 환경결정론, 비판적 지리학, 지역지리학이다. 지질학, 식물학, 경제학, 인구학과 같은 학문과의 연계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나 세계를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지구 시스템 과학의 연구로 인해 연계가 늘어났다. 참여자의 관찰과 지리 통계학은 지리학의 새로운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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