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학
한국에 사회학이 소개된 것은 8·15 광복 이전의 일이다. 경성제국대학의 윤리학과의 부 전공으로 처음 사회학과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경성제국대학이 전신이었던 서울대학교에서 1946년 법문학부 안에 사회학과가 설립되었으며, 그 후 1954년 경북대학교에 두 번째로 사회학과가 설치되었다.
음악 사회학
음악 사회학이란 예술 사회학의 한 갈래로써 음악과 사회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음악을 심미적이나 감성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사회 문화 체계 속에서 만들어진 소리로 이해하는 것이 음악사회학의 성격이다. 음악 사회학이 학문적으로 발전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베버 이후로 여겨진다. 즉, 역사적 시점, 계급에 의해서 음악의 생산, 소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 전제되는 것이다.
음악학에 대한 연구는 18세기에 왕성하게 일어났지만 음악과 사회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는 오히려 위축되었다. 베버 이후 아도르노가 등장해 음악 사회학을 발전시켰으며 1969년 그의 사망 이후 음악 사회학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으며 그 후의 사회학자들은 음악 사회학을 수용 방법에 따라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실증주의 음악 사회학, 마르크스주의 음악 사회학 등이 그 예이다. 음악과 사회와의 관계를 처음 인식하고 언급한 학자는 플라톤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당시의 음악과 사회의 관련성에 대한 해석은 학문적 접근이 아닌 당시 유력한 정책이나 의견에 따른 해석이었다. 실증주의 사회학은 경험주의 또는 실증주의에 뿌리를 두어 음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증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질버만과 블라우코프가 대표적인 실증주의 사회학자이다. 한편 마르크스주의 사회학자들은 계급분석 이론에 기초를 두고 음악의 생산, 소비의 부분에서도 계급적인 특성을 찾으려 한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사회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인정해야 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으며, 학문적 위치가 불안정하다는 것이 평설이다.
사회학주의
는 사회적 사실을 사물(chose)로서 고찰한다. 뒤르켐 학파의 사람들은 사회연구의 모든 분야에 객관주의적인 이러한 방법을 널리 적용하였다.
사회현상을 규정할 때에 특히 '사회학적'인 요인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제1차 대전 이전의 프랑스에서 뒤르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 그에게는 그것은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객관적 존재물이며, 또 그것은 생리현상이나 심리현상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실재(實在)였다. 그는 이의 예로서 '집합표상(集合表象)'의 객관적 성격을 사회적 강제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사회심리학·사회학·문화인류학의 관계
이와 같이 3 학문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셋은 모두 인간의 사회생활을 가로로 잘라 분석하는 것이나, 사회심리학은 개인의 퍼서 낼러티의 수준에서 개인의 의식과 행동이 사회적 환경에 의해 어떻게 변용되며 또 사회환경을 어떻게 바꿔가는가를 살피고 사회적 행동의 일반이론을 수립하려 한다. 이에 반하여 사회학은 사회체계의 수준에서 집단 및 사회의 구조와 기능, 나아가서는 그것들의 변동의 법칙을 밝히고, 마지막에는 집단과 사회의 일반이론을 수립하려 한다고 하겠다. 사회학도 퍼서낼러티나 문화 등을 다루지만, 그 마지막 초점은 사회체계로 모아지고, 이것에 관련하는 한에는 그것들을 다룬다고 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문화인류학은 종래의 연구상황으로 보아 미개민족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인 듯하지만, 그것은 결국 문화의 일반이론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대표적 사회학자
오귀스트 콩트
오귀스트 콩트는 실증주의적이고 경험주의적인 사회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실증주의 철학'과 '사회학'이라는 용어를 명명하였다. 몽펠리의 귀족의 가문에서 태어나 프랑스혁명 이후 파리의 이공과 대학에서 진보적인 교육을 받았다. 생시몽의 비서로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발전을 위해 그와 밀접히 공동 노력을 하였다.
이러한 관계에서 물러난 그는 생계를 위해 수학교사가 되었고, 1848년에는 실증주의협회를 창설하였다. 그의 철학은 생시몽의 사상의 실증주의적 측면을 정교화시켰다고 할 수 있는데, 프랑스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던 시기에 질서와 진보를 찾고자 했다. 그는 평등주의, 개인주의, 정치적 주권주의와 같은 철학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 철학들이 혁명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부분적 변화 때문에 실증주의가 사회의 객관적 개념으로부터 개혁주의, 인류주의, 종교에 대한 주관적인 강조로 옮겨 간 급진적 변화라고 잘못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콩트는 고전경제학이 메마른 추상, 형이상학적 사고, 경제적 사실을 부당하게 고립시켰다고 주장하여 비판을 가한다. 이는 콩트의 실증주의를 '과학주의'와 동일시하는 과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콩트의 실증주의는 단순한 경험주의로 환원될 수 없다.
콩트주의 사고는 프랑스의 레비브륄(Lévy Bruhl), 뒤르켐, 알랭(Alain)과 모라(Mauras), 영국의 스펜서, 밀, 레키(Lecky), 몰리(Morley), 독일의 역사학자인 몸젠과 그로트(Grote), 그리고 스페인, 포르투갈, 남아메리카의 학문적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사회 재조직을 위한 과학적 작업』(1822년도), 『실증철학』 6권(1830년도-1842년도), 『실증정치의 체계』 4권(1848년도-1854년도), 『실증정신론』(1844년도) 등의 사회학적 저술이 있다.
유럽의 전통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의 쇠퇴가 사회적 위기를 창출하고 있다는 신념을 받아들이면서, 그는 실증주의를 통하여 사회개혁의 전제가 되며 합의를 재건하는 윤리적, 지적 개혁을 추구했다. 그의 저작에는 당시의 보수주의(과학, 혁명, 개혁에 반대하는)와 급진주의(과학과 산업의 새로운 황금기임을 주장하는) 사이의 긴장이 나타나고 있다. 콩트는 공동가치의 체계로서 사회질서의 보수적 개념을 인정하고 있었다.
'사회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회과학 - 심리학의 역사1 (2) | 2024.04.13 |
---|---|
사회과학 - 대표적 사회학 (0) | 2024.04.13 |
사회과학 - 사회학의 연혁2 (0) | 2024.04.13 |
사회과학 - 사회학의 연혁1 (0) | 2024.04.13 |
사회과학 - 교육학 (과학으로서의 교육학) (0) | 2024.04.12 |